라마단 중반, 오스만 궁정에서 준비된 바클라바 쟁반이 예니체리에게 전달되는 의례가 있었다. 궁정에서 군사집단으로 음식이 이동하는 이 행사는 바클라바가 단순한 후식을 넘어 술탄의 증여와 궁정 질서를 드러내는 의례물로 사용됐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바클라바 행렬의 기록이 이 음식의 최초 발명지를 알려 주는 것은 아니다. 행렬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당시 궁정이 바클라바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준비하고 배포했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앞선 시대에 어떤 반죽 음식이 바클라바로 이어졌는지, 최초의 제조자가 누구였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바클라바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두 질문을 분리해야 한다. 여러 지역의 얇은 반죽·견과류·감미료 음식이 오스만 바클라바와 어떤 관련을 갖는가. 그리고 오스만 궁정에서는 이 음식의 생산과 사용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됐는가.
여러 기원설에서 비교할 수 있는 요소
바클라바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중앙아시아, 지중해와 비잔틴, 중세 아랍·페르시아 지역의 음식 전통이 자주 거론된다. 이 지역들에서는 반죽을 겹치거나 얇게 펴는 기술, 견과류를 속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 꿀이나 시럽으로 단맛을 더하는 제과류가 각각 확인된다.
이러한 공통점은 바클라바가 아무런 선행 기술 없이 갑자기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얇은 반죽, 지방, 견과류와 감미료라는 구성 요소는 오스만 제국이 성립하기 전부터 넓은 지역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사용됐다.
다만 일부 재료와 조리 특징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하나의 음식이 다른 음식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반죽의 두께와 배열, 속 재료를 넣는 위치, 굽거나 튀기는 방식, 감미료를 더하는 시점이 다르면 완성된 음식의 구조도 달라진다.
바클라바의 명칭이 확인되는 시기와 그보다 앞선 유사 음식의 존재도 구분해야 한다. 오래된 문헌에 여러 겹의 반죽이나 견과류를 사용한 음식이 등장하더라도, 그것이 당시부터 바클라바라는 이름으로 불렸거나 현재 알려진 형태와 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중앙아시아 겹반죽설이 설명하는 범위
음식사 연구자 찰스 페리는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사회에서 확인되는 겹친 빵과 반죽 전통을 바클라바 형성의 선행 요소로 해석했다. 이 견해는 반죽을 포개는 조리 기술이 튀르크계 집단의 이동과 함께 서쪽 지역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 학설은 바클라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여러 겹 반죽의 계보를 설명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겹친 빵이 견과류와 시럽을 넣어 구운 오스만 궁정의 바클라바와 같은 음식이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중앙아시아 기원설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반죽을 겹치는 기술적 배경의 일부다. 견과류와 감미료의 결합, 궁정 제과로서의 생산 방식, 의례 음식으로서의 기능까지 모두 중앙아시아에서 완성돼 전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잔틴·지중해 음식과의 유사성
고대 지중해와 비잔틴 지역에서 확인되는 여러 겹 반죽 음식도 바클라바와 비교된다. 반죽 사이에 치즈나 다른 속 재료를 넣고 꿀을 사용한 음식들은 겹친 반죽과 감미료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속 재료와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음식이 바클라바로 직접 이어졌다고 단정할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비잔틴 영역과 초기 오스만 아나톨리아가 공간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음식 기술이 접촉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지리적 연속성만으로 특정 조리법의 전승을 입증할 수는 없다.
비잔틴·셀주크·오스만 음식문화 사이의 연속성을 판단하는 일반적인 사료 기준은 별도의 글에서 다룰 문제다. 바클라바와 관련해서는 유사한 반죽 음식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것이 오스만 바클라바의 직접 원형이었다는 주장을 구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중세 아랍·페르시아권의 제과 전통
13세기 시리아 조리서에는 반죽과 시럽, 피스타치오를 사용한 제과류가 기록돼 있다. 이 음식은 바클라바와 일부 재료를 공유하지만, 견과류가 여러 반죽층 사이에 배치되는 현재의 대표적인 형태와는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설명된다.
이 자료는 중세 서아시아에서 반죽·견과류·감미료를 결합한 제과 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같은 재료가 사용됐다는 이유만으로 두 음식을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점도 드러낸다.
페르시아와 아랍 음식문화에서 발전한 견과류와 감미료 사용은 바클라바가 형성될 수 있었던 넓은 제과 환경을 설명한다. 하지만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 특정 페르시아 또는 아랍 음식 하나를 바클라바의 유일한 원형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바클라바라는 명칭의 어원에도 여러 견해가 있으며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언어적 유사성만으로 특정 지역이나 민족을 최초 발명자로 정하는 설명도 신중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의 겹반죽 기술, 지중해와 비잔틴의 여러 겹 반죽 음식, 중세 아랍·페르시아권의 견과류와 감미료 사용은 각각 바클라바의 일부 특징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요소들이 어느 시점에 하나의 조리법으로 결합했는지를 연속적인 문헌 자료로 완전히 복원하기는 어렵다.
오스만 문헌에서 바클라바가 확인되는 범위
음식사 연구자 프리실라 메리 이신은 자신이 검토한 자료 가운데 15세기 전반에 활동한 카이구수즈 압달의 시를 바클라바에 관한 이른 문헌 사례로 제시한다. 이는 바클라바라는 명칭이 오스만 시대 초기부터 알려져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다만 시에 음식명이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조리법까지 알 수는 없다. 반죽의 겹수, 사용한 견과류와 감미료, 굽는 방법이 현재의 바클라바와 같았는지는 음식명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메흐메트 2세 시기의 궁정 식품 기록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바클라바와 관련된 항목이 확인된다. 궁정 회계자료에는 바클라바라는 음식명과 이를 만드는 데 사용한 것으로 해석되는 쟁반이 나타난다.
이 기록은 바클라바가 문헌에 이름만 남은 음식이 아니라 궁정에서 실제로 준비하고 소비한 제과류였음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회계 장부는 조리서가 아니므로 재료의 정확한 비율, 반죽을 만드는 순서, 가열 방법까지 알려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오스만 기록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바클라바의 궁정 생산과 소비다. 현재와 동일한 제조법이 언제 완성됐는지, 초기 궁정 바클라바가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기록의 범위를 넘어선다.
궁정 생산에서 제도화된 것
오스만 궁정에서 바클라바가 얻은 역사적 의미는 최초 발명보다 생산 관리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궁정 조직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단 음식 생산과 관련된 별도 공간이 확인되며, 회계자료에는 바클라바와 다른 제과류,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물이 구분돼 나타난다.
이는 바클라바가 특별한 경우에만 임시로 만든 음식이 아니라 궁정 주방의 관리 대상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 준다. 재료와 기물을 확보하고, 일정한 생산공간에서 음식을 준비하며, 필요한 행사에 배분할 수 있는 조직적 조건이 형성돼 있었다.
다만 이러한 기록을 바클라바 제조법의 완전한 표준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장부에 음식과 기물이 반복해서 등장하더라도 모든 제과 담당자가 항상 같은 분량, 같은 반죽 장수와 같은 조리시간을 사용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지는 않는다.
궁정의 전문화된 생산환경이 얇은 반죽을 다루는 숙련 기술을 반복하고 전수하는 데 유리했을 것이라는 해석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공간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연구자의 해석이며, 궁정이 얇은 반죽 기술 자체를 처음 발명했다는 뜻은 아니다.
반죽·버터·견과류·시럽의 관리
후기 오스만 조리서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바클라바를 포함한 단맛의 반죽 음식에 밀가루 반죽, 버터, 시럽과 여러 견과류가 사용된 사례가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은 바클라바가 반죽 하나만으로 성립하는 음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재료의 역할을 결합한 제과류였음을 보여 준다.
얇은 반죽은 여러 층을 만들고, 지방은 반죽층이 한 덩어리로 붙는 것을 줄이며, 견과류와 시럽은 질감과 단맛을 더한다. 다만 후기 조리서에 기록된 재료와 제조법을 15세기 궁정 바클라바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사용된 견과류와 감미료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궁정의 바클라바가 언제나 한 종류의 견과류로 만들어졌다거나 모든 시기에 동일한 시럽을 사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궁정 음식에서 버터와 향료가 담당한 더 넓은 역할은 「버터·레몬·로즈워터로 살펴보는 오스만 궁정의 맛과 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클라바의 여러 층을 구성하는 데 지방이 필요했다는 범위까지만 다룬다.
바클라바가 반드시 정확히 40겹이어야 했다는 주장도 현재 검토한 궁정 자료에서는 공통 규정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특정 지역이나 후대 제과점의 제조 관습을 오스만 궁정 전체의 공식 기준으로 소급해서는 안 된다.
바클라바 행렬과 왕조·군사 의례
바클라바가 궁정 생산체계를 넘어 공식적인 의례 음식이 됐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클라바 행렬이다. 관련 연구에는 라마단 중반 궁정에서 준비한 바클라바 쟁반을 예니체리에게 전달하는 행사가 기록돼 있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행렬이 라마단의 전체 식사 운영에서 차지한 시간표가 아니다. 궁정에서 생산한 바클라바가 술탄의 이름으로 군사집단에 배포됐고, 그 전달 과정이 공개적인 의례로 구성됐다는 사실이다.
바클라바는 이 행사에서 개인이 선택해 먹는 후식이 아니라 왕조가 군사집단에 제공하는 증여물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를 술탄의 후원과 예니체리의 집단적 지위를 드러내는 의례로 해석한다.
다만 행렬 기록으로 바클라바의 정확한 조리법을 복원할 수는 없다. 쟁반이 전달됐다는 기록은 반죽의 겹수, 견과류의 종류, 조리 담당자의 수와 세부 이동 경로를 자동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또한 바클라바를 받는 행위가 모든 경우에 충성을 뜻했다거나 수령 과정의 이상이 곧바로 정치적 반항을 의미했다고 일반화해서도 안 된다. 행렬이 왕조와 군사집단의 관계를 표현했다는 것은 기록에 근거한 역사적 해석이며, 개별 사건의 의미는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다.
궁정에서 디저트가 행사와 증여, 환대에 사용된 현상은 군사 의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황실 가족과 하렘의 행사에서 단 음식이 맡은 역할은 「오스만 황실 하렘의 행사와 환대에서 단 음식과 셔벗은 어떻게 사용됐을까」에서 별도로 다룬다. 바클라바 행렬의 기록을 하렘의 일상식이나 여성 행사의 메뉴로 옮겨서는 안 된다.
현대 바클라바로 궁정 조리법을 복원할 수 없는 이유
오늘날 여러 지역에서 만드는 바클라바는 견과류와 형태, 반죽의 두께와 감미료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다양성은 하나의 현대 지역형이 오스만 궁정 전체의 제조법을 변형 없이 보존했다는 주장을 경계하게 한다.
현대 레시피는 정확한 온도와 조리시간, 재료의 양과 반죽 장수를 제시할 수 있다. 반면 오스만 궁정의 회계 장부는 식재료와 기물, 음식의 생산·배포를 더 잘 보여 주며 세부 조리법을 완전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 방식으로 만든 바클라바를 오스만 궁정 바클라바의 정확한 복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문헌에서 확인되는 재료와 기본 구성을 참고한 현대적 재현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다.
얇은 반죽을 여러 겹으로 쌓고 지방·견과류·감미료를 결합하는 기본적인 구성에는 연속성이 있다. 하지만 재료의 품종과 생산도구, 조리환경과 지역별 기준은 계속 달라졌다. 현대 튀르키예의 바클라바와 과거 궁정의 바클라바는 연결된 전통이지만 동일한 조리법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기원 논쟁과 별개로 확인되는 역사적 변화
바클라바의 역사를 두 가지 판정으로 나누면 자료가 보여 주는 범위가 명확해진다.
첫째,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 바클라바의 최초 발명지를 하나의 국가나 문명으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여러 지역의 음식에서 얇은 반죽, 견과류와 감미료라는 유사한 요소가 나타나지만, 이들이 오스만 바클라바로 직접 이어지는 전 과정을 보여 주는 연속적인 기록은 부족하다.
둘째, 오스만 궁정에서 바클라바의 생산과 관리, 의례적 배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별도로 확인된다. 음식명과 관련 기물이 궁정 기록에 나타나며, 바클라바 행렬은 이 음식이 왕조와 군사집단의 관계를 나타내는 공식 증여물로 사용됐음을 보여 준다.
궁정의 역사적 역할을 평가할 때 이 두 판정을 섞어서는 안 된다. 궁정에서 생산과 의례가 제도화됐다는 사실은 오스만 궁전이 바클라바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반대로 최초 발명지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궁정 기록이 보여 주는 생산 관리와 의례적 사용까지 부정할 수도 없다.
바클라바의 오스만 궁정사는 음식의 원조를 결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여러 재료와 기술이 궁정의 생산조직과 왕조 의례 안에서 관리되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과정이다.
핵심 참고자료
- Priscilla Mary Işın, Sherbet and Spice: The Complete Story of Turkish Sweets and Desserts, 2013, 음식사 연구서. 바클라바 명칭의 이른 문헌 사례를 검토하는 데 사용.
- Özge Samancı, La cuisine d’Istanbul, 2015, 음식사 연구서. 궁정 기록의 바클라바, 제과 생산공간과 관련 기물을 확인하는 데 사용.
- Charles Perry, “The Taste for Layered Bread among the Nomadic Turks and the Central Asian Origins of Baklava,” 1994, 학술서 수록 논문. 중앙아시아 겹반죽설을 설명하는 데 사용.
- Syed Tanvir Wasti, “The Ottoman Ceremony of the Royal Purse,” 2005, 학술논문. 바클라바 행렬과 궁정·군사 의례를 확인하는 데 사용.
- Library of Arabic Literature, 중세 시리아 조리서 Scents and Flavors의 제과 기록 해설. 중세 아랍권 반죽·견과류·시럽 제과를 비교하는 데 사용.
- Encyclopaedia Iranica, “Bāqlavā: The Word” 및 “Bāqlavā: The Sweet,” 전문 백과사전 항목. 명칭의 어원과 페르시아권 관련 견해의 한계를 확인하는 데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