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톱카프 궁전의 제국회의 식사를 분석한 연구에서 필라프는 첫 번째 음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18세기에는 필라프가 호샤프와 함께 식사의 마지막에 제공되기 시작했고, 19세기 초의 궁정 접대 기록에서도 비슷한 순서를 확인할 수 있다. 필라프를 오스만 연회의 고정된 마지막 음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조리 방식도 하나가 아니었다. 15세기 조리서에는 고기·병아리콩·말린 살구·아몬드·사프란 등을 서로 다르게 조합한 쌀 음식이 기록돼 있고, 19세기 조리서에는 쌀이 물을 흡수하게 익히는 방법과 삶은 뒤 물을 따라내는 방법이 함께 나타난다. 다만 이 자료들은 작성 시기와 목적이 다르다. 오스만 궁정의 필라프를 이해하려면 여러 기록을 하나의 표준 레시피로 합치지 않고, 각 자료가 알려 주는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
장부와 조리서가 알려 주는 내용은 다르다
15~17세기의 궁정 주방 장부에는 식재료의 구매와 배분, 일부 음식 이름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재료의 정확한 비율이나 불의 세기, 조리 순서까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리프 빌긴은 궁정 문서에서 음식명이 부분적으로 확인되지만 상세한 조리법은 기록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장부는 필라프가 궁정에서 사용됐다는 사실을 보여 주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완전하게 복원해 주지는 않는다.
조리서는 재료와 조리 과정을 장부보다 자세히 보여 준다. 반면 책에 수록된 음식이 모두 톱카프 궁전에서 일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특히 19세기 조리서를 15~17세기 궁정의 실제 조리법으로 소급해서는 안 된다. 빌긴의 연구에서도 고전기 궁정 음식은 오늘날의 음식뿐 아니라 19세기 음식과도 재료와 맛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필라프에 사용된 쌀 역시 궁전 주변에서만 생산된 것은 아니었다. 고전기 궁정의 쌀은 필리베와 이집트 등 지방 공급지와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생산지·운송·시장 체계는 필라프 조리법과 별개의 문제다. 이 내용은 「15~17세기 이스탄불 식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 톱카프 궁전이 의존한 수도 공급망」에서 자세히 다루며, 여기에서는 궁정의 필라프가 외부의 쌀 공급에 의존했다는 배경만 확인한다.
‘다네’는 하나의 고정된 조리법이 아니었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일부 오스만 조리 자료에서는 필라프를 ‘다네(dane)’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모든 경우에 동일한 재료와 조리법을 가리키지 않았다. 시르바니의 15세기 조리서에는 서로 다른 구성의 다네 세 종류가 기록돼 있다.
다네이 네르기시예에는 양고기·당근·병아리콩·양파와 지방이 사용됐다. 다네이 카부니예에는 양고기·양파·병아리콩·말린 살구와 함께 커민·계피·후추가 들어갔다. 무자페리예는 닭고기·아몬드·사프란·양파·설탕을 사용한 단맛과 짠맛이 함께 있는 쌀 음식이었다. 세 음식은 같은 ‘다네’라는 범주에 속했지만 재료 구성은 서로 달랐다.
이 조리법의 존재는 15세기 오스만 영역에서 여러 형태의 쌀 조리 지식이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세 음식이 톱카프 궁전의 매일 식사에 얼마나 자주 제공됐는지는 이 조리서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조리 지식이 기록됐다는 사실과 궁정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됐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또한 ‘다네’를 오늘날의 모든 필라프와 동일한 음식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같은 명칭이 이어졌더라도 사용한 재료와 조리기구, 제공된 행사의 성격은 달라질 수 있다. 역사적 연속성을 판단할 때에는 음식 이름보다 개별 조리법과 사용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19세기 조리서에는 두 가지 쌀 익히기 방식이 나타난다
메흐메트 카밀이 쓴 《멜제위트 타바힌(Melceü’t-Tabbâhîn)》은 1844년 석판으로 출간됐으며, 필라프를 포함한 여러 음식군을 별도 장으로 분류했다. 이 책은 19세기 이스탄불 조리문화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고전기 톱카프 궁전의 조리 현장을 직접 기록한 자료는 아니다.
외즈게 사만즈가 정리한 19세기 조리서의 한 방법에서는 쌀을 소금물에서 익혀 물이 흡수되게 한 뒤 녹인 버터를 더하고 약한 불에서 마무리했다. 다른 방법에서는 쌀을 소금물에 삶은 다음 물을 따라내고 다시 냄비에서 수분을 정리한 뒤 녹인 버터를 부었다. 같은 시대의 조리서 안에서도 쌀을 다루는 방법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해당 조리서에서 페르시아식과 관련된 방식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명칭만으로 필라프의 최초 발생지나 오스만 궁정으로 전해진 직접적인 경로를 확정할 수는 없다. 조리서가 보여 주는 사실은 19세기 이스탄불에서 서로 다른 쌀 조리 기술이 알려져 있었다는 범위에 한정된다.
현대 조리법에서 사용하는 정확한 불림 시간이나 쌀과 물의 계량 비율을 이 자료에 덧붙여서는 안 된다. 과거 조리서에 기록되지 않은 수치를 보완하면 현대의 조리 기준이 역사적 사실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재료에 따라 서로 다른 필라프가 구분됐다
필라프에는 언제나 고기·견과류·말린 과일이 함께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15세기 다네 조리법에서도 고기와 채소를 중심으로 한 음식, 말린 살구와 향신료를 넣은 음식, 닭고기와 아몬드·설탕을 사용한 음식이 구분됐다. 이러한 차이는 ‘궁정 필라프’라는 하나의 고정된 재료 목록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17세기 제국회의 관련 기록에서도 일반 필라프 외에 후추·건포도·호박·오디·불구르·시금치·밤·다진 고기·닭고기·양고기 등을 사용한 여러 종류가 확인된다. 같은 기록에서 고위 인사들에게는 다양한 필라프가 제공된 반면, 회의에 속한 하급 인원들에게는 일반 필라프만 제공된 것으로 정리된다. 이는 특정 행사에서 음식의 종류가 신분에 따라 달랐던 사례이지, 오스만 궁정의 모든 식사에 적용된 고정 규칙은 아니다.
19세기 필라프 조리법에서는 버터가 반복적으로 사용됐지만, 생선과 조개류가 들어간 일부 필라프에는 올리브유가 사용됐다. 따라서 지방의 종류 역시 모든 필라프에서 같지 않았다. 익힌 쌀에 녹인 버터를 더한 조리 과정은 기록으로 확인되지만, 버터가 모든 시대와 모든 필라프에 반드시 사용됐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말린 과일·설탕·지방·향신료가 함께 사용된 배경은 필라프 한 종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궁정 음식 전체의 맛 구성은 「단맛과 짠맛을 함께 사용한 오스만 궁정 요리의 풍미 원리」에서 별도로 다룬다.
필라프의 제공 순서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사만즈가 헤다 라인들킬의 연구를 인용해 정리한 17세기 제국회의 식사에서는 필라프가 첫 번째로 제공됐고, 그다음에 수프가 나왔다. 이어지는 음식의 종류와 순서는 달라질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주로 고기 요리가 놓였다. 외국 고위 인사를 위한 접대에서도 음식 수는 늘어났으나 필라프가 먼저 제공되는 기본 순서는 유지된 것으로 분석된다.
18세기에는 순서가 달라졌다. 당대 기록을 정리한 연구에서는 수프가 먼저 나오고 필라프가 식사의 끝부분에 놓였으며, 뒤이어 호샤프가 제공됐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초 외국 사절 접대 기록에서도 필라프와 호샤프가 마지막에 나온 사례가 확인된다. 따라서 ‘필라프는 항상 마지막 음식이었다’거나 반대로 ‘항상 첫 음식이었다’는 설명은 모두 특정 시대의 관습을 전체 기간에 확대하는 오류가 된다.
다만 18세기 이전의 모든 식사에서 음식이 한 접시씩 차례로 나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6세기의 일부 여행 기록과 도상 자료에는 여러 음식이 함께 놓인 장면이 나타나지만, 17세기의 다른 기록에서는 음식이 순서대로 교체됐다. 행사와 자료에 따라 관찰이 다르므로 하나의 상차림 방식을 궁정 전체의 규칙으로 정하기 어렵다.
19세기 후반부터 외국 손님을 위한 궁정 연회에는 프랑스식 식사 형식이 점차 사용됐다. 20세기 초의 일부 공식 메뉴에서는 필라프가 주요 고기 요리 뒤, 크림·아이스크림 같은 후식 앞에 배치됐다. 필라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식사 순서 안에서 놓이는 자리가 달라진 것이다.
필라프 외 음식의 순서, 낮은 상과 식기, 참석자의 자리와 행동 규범은 「톱카프 궁전의 공식 식사와 연회: 자리 배치와 식사 예법」에서 별도로 다룬다.
필라프는 궁정만의 음식이 아니었다
필라프는 궁정과 엘리트 식사에서 중요한 음식이었지만 황실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7세기 이스탄불 시장에서 필라프가 판매된 기록이 있으며, 자선시설에서는 평상시보다 금요일 밤이나 축일 같은 특별한 때에 필라프가 제공되기도 했다.
이 사실만으로 제국 주민이 필라프를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지역과 시기, 경제적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정과 일반 식탁의 차이는 특정 기록에서 확인되는 범위 안에서만 비교해야 하며, 필라프의 존재 여부만으로 신분을 구분할 수는 없다.
같은 이름이 같은 음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튀르키예에서는 쌀이나 불구르를 사용한 여러 필라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같은 명칭이 이어진다는 이유만으로 현재의 조리법을 15세기나 17세기 궁정 음식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19세기 조리서만 보더라도 필라프의 재료와 조리 방법은 다양했다. 고전기 궁정 기록은 그보다 앞선 시대의 또 다른 조건을 반영한다. 따라서 현대에 복원한 조리법은 역사 자료를 해석해 다시 만든 결과로 구분해야 하며, 과거 궁정 조리법의 변하지 않은 원형으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필라프의 역사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하나의 원형이 아니다
오스만 궁정의 필라프를 하나의 표준 조리법으로 복원하기는 어렵다. 장부는 구매와 배분, 음식의 명칭을 주로 보여 주고, 조리서는 구체적인 재료와 과정을 보여 주지만 실제 궁정에서의 사용 빈도까지 알려 주지는 않는다. 두 자료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기 때문이다.
필라프가 궁정 음식에서 중요했다는 사실은 호화로운 재료의 사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5세기 조리서에서 서로 다른 다네가 구분됐고, 17세기 제국회의에서는 참석자의 지위에 따라 종류가 달랐으며, 18세기 이후에는 식사 순서도 바뀌었다. 확인 가능한 역사적 특징은 불변의 레시피가 아니라, 같은 음식 이름 아래 재료와 조리 방식, 제공 상황이 계속 달라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스만 궁정 필라프의 역사를 이해하는 기준은 오늘날의 음식과 얼마나 비슷한가가 아니다. 어느 시대의 어떤 기록이 어떤 재료와 조리법, 제공 순서를 보여 주는지 구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필라프는 변하지 않은 궁정 전통의 표본이라기보다, 궁정의 조리 지식과 식사 질서가 시대에 따라 재구성된 과정을 보여 주는 음식이었다.
핵심 참고자료
- Özge Samancı, La cuisine d’Istanbul au XIXe siècle, 2015, 음식사 연구서. 필라프의 시대별 명칭·조리법·종류·제공 순서를 확인하는 데 사용.
- Arif Bilgin, 「Ottoman Palace Cuisine of the Classical Period」, 2008, 궁정 장부 기반 음식사 연구. 고전기 장부의 성격, 쌀 조달과 필라프 사용 범위를 확인하는 데 사용.
- Mehmed Kâmil, 《Melceü’t-Tabbâhîn》, 1844, 오스만 조리서. 19세기 조리서의 구성과 필라프 분류를 확인하는 데 사용.